[건립위원회 소식][한겨레] 생명은 절대적 가치…보건의료의 핵심이어야


[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공공의료


다양성·상호책임이 생명의 본성

의료의 시장논리, 생명존중 위협

영·독 공공의료-한국 민간이익

그래도 새 길 내는 사람들이 희망


지난해 9월 설립 20주년을 앞두고 녹색병원 의료진이 서울 중랑구 면목동 병원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녹색병원은 공공의료를 지향하고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한겨레 토요판 지면에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글을 실었다. 이번이 마지막 칼럼이다. 돌이켜보면 구태여 이런 글이 왜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당연한 주제의 글들이었다. 생명의 다양성은 존재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고, 생명의 공공성은 모든 생명은 필연적으로 상호작용 가운데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짚은 것일 따름이다. 이처럼 당연한 주장을 여러 사회 이슈를 통해 칼럼에 담은 까닭은 현재 우리가 처한 모습이 생명의 핵심적인 속성들을 거스르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생명의 속성을 거스르는 사례 중 중요하게 부각되는 사례는 최근 의대 정원 이슈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보건의료 시스템과 관련된 사태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논하기 앞서 먼저 왜 생명의 공공성이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핵심적인 주제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영·독은 의사들이 '의대 증원' 앞장

우선 생명은 서로 비교가 되는 상대적 가치 아래 놓여 있지 않다. 외모, 성별, 나이, 지역, 직업, 학력, 인종, 민족, 정치적 성향에 무관하다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 생명이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모두를 위한 건강'을 추구하고, 보편적 의료보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대표적 공공의료 시스템인 영국 국가보건시스템(NHS)은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최대한 공정하게 활용하고,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받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핵심 가치로 추구한다.


이에 반하여 의료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시장 논리에 맡기게 될 경우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은 명백한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빈부 격차나 지역 격차에 따라 의료시장이 형성되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생명은 철저히 부의 정도에 따라 계층화되고 대상화된다. 건강 수명의 양극화는 심화하고, 생산 연령에서 벗어난 어린이, 노인의 생명은 상대적으로 침해된다. 생명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공리로 여기지 않는 사회는 누군가의 생명이 누군가의 생명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생명의 공공성이 사회의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핵심이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호 책임성의 원리로부터 찾을 수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건강에 대해 모두가 책임을 나눠 지고 있다는 인식은 생명을 공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블랙홀처럼 에너지를 흡입하는 도심의 온갖 시스템들은 거주자들의 생활 패턴을 규정하고 공동체의 환경을 변화시켜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시시각각 좌지우지한다. 구성원들의 건강을 결정하는 환경은 각 개인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다. 따라서 상호책임성의 원리를 수용하지 않는 사회는 실상 아무 책임이나 배상 없이 일상적인 가해가 범람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가해의 책임에서 벗어날 길은 생명의 공공성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이다.


보건의료 시스템에 생명의 공공성이 구현된 정도를 가늠할 지표로 무엇보다 공공병원을 꼽을 수 있다. 공공병원은 공적 자원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건강에 대한 상호책임성의 원리를 구현하고, 경제력이나 지역에 따른 의료접근성 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체계다. 또한 공공병원은 고비용 진단·치료 등으로 고수익을 추구하는 대신 질병 예방이나 공중 보건 등에 초점을 맞추어 공동체의 건강 향상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공공병원이 그 사회의 주류가 될 때에야 의사 집단의 사익은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 향상이라는 공익과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중요한 문제점들이 보인다. 최근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파업이 장기화한 이유는 의사 개인의 윤리적 품성이나 자질의 문제라기보다 공공의료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영국 정부는 9500명 수준인 의대 정원을 2031년까지 1만5천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발표는 의사 단체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뤄졌다. 독일 의사협의회도 지난해 의대 입학정원을 추후 6천명 더 늘릴 것을 연방정부에 요청했다. 지금 경제 선진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사회의 급속한 노령화로 인해 의료서비스 공급의 대규모 확충이라는 과제 앞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과 독일의 의사들은 더 늦기 전에 의사 증원을 통해 의료서비스 공급을 적정화해야 한다고 앞장서 제안하고 있다.


아픈 사회 치유하려 애쓰는 사람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의대 증원 규모의 적정성에 대한 민주적 의견 수렵 절차의 부재 등과 같은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핵심 이유는 의사들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영국은 공공병원과 공공병상의 비율이 모두 100%에 육박한다. 독일 역시 공익병원을 포함한 공공병원이 60%, 공공병상의 비중은 82%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현재 공공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6%에 불과하고, 공공병상 수도 전체의 10%에 못 미친다. 대다수 병원의 이익은 곧 민간의 이익이고, 의사들의 대다수는 민간 병원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례로 든 영국의 경우 의사들은 국가에 채용된 공무원이고, 독일의 경우 공공병원 의사들은 단체협약을 통해 연차와 직급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성의 보루가 되어야 할 국가의 역할이 자못 중요한 만큼 그 공백이 참으로 크다. 공공성의 철학이 부재한 정부는 의료 문제의 프레임을 의대 정원 문제로 축소하고 의사들의 아권 다툼으로 사태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의사들의 입에서 '의사 정원을 늘리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보건의료 시스템이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이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우리 안에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장의 노동시간과 최고 수준의 산재 치명률, 지역 간 큰 건강 격차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 아픈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오랜 노력의 흐름이 최근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추진이나 지역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여러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의료를 실천해온 의사들과 여기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새 길을 내고 있다. 희망은 이렇게 우리 안에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 위에서 생명의 공공성을 발견하고 서로가 서로를 책임지는 사회가 열릴 수 있기를 염원한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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