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이야기]송찬섭 님 이야기

2025-04-15

*송찬섭 님은 2017년 12월 19일 맨 처음 녹색병원을 방문하여 후원금을 전하신 이래, 병원과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위해 여러차례 일시후원을 해오셨고 현재까지 꾸준히 정기 후원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가르쳤으며 2021년 정년퇴임 하셨습니다.




녹색병원은 공익병원이자 ‘공유’병원



Q. 후원자로 계속 인연을 이어가며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국가 비상사태를 거치면서 젊은 층이 녹색병원과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의 존재를 알고 대거 후원했던 반가운 소식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벌써 접했지요.(웃음) 2024년 10월과 12월에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추진에 동참한 분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소식, 참 대단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12월 남태령에서 있었던 농민들의 상경투쟁 과정에서 온라인을 통한 시민들의 기부 참여가 인상 깊습니다. 특히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함께 힘을 모아주기에 시급한 데가 어디인 것 같으냐?”며 젊은이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세대를 아울러 우리 사회에는 ‘광주’, ‘전태일’이라는 단어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잠복해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기부에 나선 2030 젊은이들이 앞으로 녹색병원, 전태일의료센터를 활용하는 데도 적극적이었으면 합니다.

녹색병원은 이미 지역거점병원으로서 주민에게 안정적으로 뿌리내리지 않았나 싶어요. 병원이 위치한 지역 외에, 일반 시민들에게는 어떻게 각인이 되어있을까요? 아직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종합병원으로서 녹색병원의 진료는 물론, 녹색병원의 탄생에 담긴 정신과 실현하고자 하는 미션, 공익적 의료가 더 널리 알려져 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이 이용하면서 서로에게 도움 되었으면 합니다.




Q. 선생님께 녹색병원은 어떤 의미인가요? 왜 더 각별하실까요?

저는 ‘공유(公有)’라는 표현을 참 좋아하는데요. 공공의 ‘공(公)’ 자를 쓰죠. ‘사유(私有)’의 반대말이에요. ‘공유’한다는 건 그 값어치나 금액의 크고 작음,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두루 함께 가진다는 건데요.

언뜻 共有(공유)와 비슷해 보일 수 있는데, 共有는 함께 가진다고 하지만 대개 지분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公有(공유)는 일반적으로 ‘국가나 지방단체가 가지는 것’을 가리키지만 저는 좀 적극적으로 해석해 전체를 함께 가지는 것, 제가 좋아하는 표현으로는 ‘전체를 서로 겹쳐서 누린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공원(公園)’도 그런 개념으로 만든 용어이겠지요. 창경궁, 경복궁을 다녀오면 저는 ‘내 정원’에 다녀왔다고 얘기를 합니다. “내가 가진 땅이 이렇게나 많다!”며 허세를 부리는 거죠.(웃음) 개별적 소유에만 목매다는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녹색병원과 전태일의료센터가 일하는 사람의 ‘공유(公有)’ 공간이고, 자발적으로 돈을 내며 후원하는 이들의 공유 공간이기도 하며, 지역주민이나 병원 이용자의 공유 공간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녹색병원은 온기를 가진 따뜻한 병원입니다. 서로가 스며들고 녹아 들어가는 이 공간을 모두가 같이 향유하면 좋겠어요. ‘공유(公有)’ 의식을 확대하면서 말이죠.

 


Q. 후원을 넘어 ‘공유’하는 병원으로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시네요.

그렇죠. 녹색병원, 전태일의료센터 후원회원 중에서도 실제 병원을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 사회에 중요한 공간들이 많은데요. 후원자들에게는 본인이 직접 응원을 보내는 곳이니 녹색병원이 중요한 공간 아닐까요. 요즘 젊은이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다녀간 곳을 직접 찾아가 보는 일을 ‘성지순례’ 한다고 표현하더군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성지순례랄까요? 아니면 조용한 답사? 혹은 가볍게 산책하듯 본인이 후원한 병원을 직접 다녀가 보는 거죠. 그냥 다녀가기 뭐하면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던지, 검진을 하러 갈 수도 있죠. 실제 와서 병원 내부를 들여다보고, 병원에 설치된 색다른 조형물도 보고 경사로를 따라 직접 걸어볼 수도 있고요. 아, 경사로는 꼭 권하고 싶습니다. 벽에 후원자, 후원기관의 명단이 쭉 걸려 있는데 그 가운데는 BTS 제이홉, 김남준 이름도 있더군요. 팬들이 그들의 이름으로 후원금을 보냈다지요. 때로는 직접 치료를 받아보면서 만족할 수도 있고요, ‘이런 게 아쉬운데 이렇게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쓴소리를 할 수도 있죠. 살고 있는 곳과 거리감이 조금 있더라도 직접 한번 와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Q. 선생님이 맨 처음 녹색병원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금 병원 1층 로비에서 후문으로 연결된 통로에 고맙게도 저의 처남이 그려진 그림(가족과 함께)이 걸려 있습니다. 후원의 계기와도 관련있지요. 저희 처남이 정신장애로 40년을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집사람은 동생을 위해 병원에 기부하고 싶어 했죠. 한때 입원했던 대학병원에 기부할까 고민하길래, 제가 직접 관련있는 병원은 아니지만 녹색병원과 같은 공익병원에 기부하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어떠냐고 의견을 냈어요. 그래서 2017년 12월에 맨 처음 기부금을 마련하여 녹색병원 사회복지과(지역건강센터)를 찾아갔어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집단 산재 인정투쟁으로 세워진 녹색병원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당시 녹색병원이 인권치유센터를 만들고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터라 더 인상 깊었습니다. 이후로 병원에 들르면, 별로 닮지는 않았지만(웃음) 항상 처남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지요.

아무튼 처음에는 기부에만 관심을 가졌다가 언제부터인가 진료도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기관지확장증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시술까지 받았는데, 녹색병원에서 중간 점검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 뒤 다른 치료도 받고, 종합검진도 받는 등 접촉을 늘려나갔습니다.

집사람도 녹색병원이 집에서 조금 멀기도 하고, 후원하는 곳이라고 자꾸 찾아가면 일하는 분들을 번거롭게 하는 거라며 진료를 보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작년에 신경장애 때문에 녹색병원에 와서 검사를 한번 하였고, 이번에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집과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을 갔다가 “머리에 아무 문제 없다, 나가라”고 해서 당황해하다가 결국 녹색병원으로 오게 된 거죠. 여기서는 신경과에서 바로 전정신경염 진단을 받고 입원했어요. 이제 집사람도 그냥 후원자에서 가장 적극적인 이용자가 된 셈이지요.

 

 

Q. 그래서 직접 찾아와서 보고, 이용도 하면서 경험을 해보는 게 좋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병원을 직접 이용하면서, ‘후원에 끝나지 않고 직접 와보는 게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공익병원이자 공유병원으로서 녹색병원을 우리가 스스로 이용해 보면서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가면 좋겠다 싶어요. 병원이 가진 가치와 사명이 좋아서 후원을 하지만, 실제 활용하고 경험함으로써 그 가치를 늘려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 2030 젊은 세대가 기부에 많이 동참한 만큼, 젊은 분들도 많이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후원금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구태여 찾아가기가 쑥스럽다’ 생각하실 필요도 없고요. 저는 액수가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젊은 분들의 후원금은 여유있는 분들이 내신 기부금의 백배, 천배의 가치예요. ‘공유(公有)’의 측면에서, 액수에 상관없이 아끼고 후원하는 마음을 내었다면 우리가 만드는 병원을 모두 함께 향유할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해요. 녹색병원을 응원하고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위해 스스로 마음을 낼 수 있다는 것, 그런 행위에 가치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거죠. 이 사실이 서로의 마음에 분명 스며들고 있어요.

이번에 집사람이 입원하면서 보호자로 상주하며 병원 3층 책 대여 코너를 둘러보다가 특별한 만화책을 발견했어요. 옛날에 저희 아들이 중학생일 때 같이 봤던 <닥터 고토 진료소>라는 일본 만화인데요. 어느 외딴섬에 있는 진료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진료소에 파견된 의사(고토)와 섬 주민들이 서로 스며들며 살아가는 이야기죠. 녹색병원이 지역 안에서 스며들고, 지역을 뛰어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스며드는 병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집사람과 해외여행을 간 지도 오래 되어 근래에 한번 다녀올까 하고 있었어요. 외국은 아니지만 결국 집에서 떨어져 이렇게 여행을 온 셈이네요. 조금 오래 입원하면서 저와 집사람은 운동 삼아, 여행 삼아 병원 곳곳, 하늘공원, 후원자의 명단과 그림·사진이 전시된 경사로, 병원 주변 등을 산책하면서 즐겼습니다. 특히 경사로에서 만날 수 있는 ‘길과 동행’의 의미를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 소중한 공간을 통해 실현할 가치와 함께 나아갈 사람들과의 결합을 마음으로 느끼며 녹색병원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아픈 건 좋은 일이 아니지만 그 때문에 배울 수 있었던 건 참 좋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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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섭 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턱’ 하고 걸린 대목이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병원 후원자라고 해서 병원을 자주 찾아오는 게 직원들을 오히려 신경 쓰이게 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병원 측에서도 ‘병원 많이 찾아주시고 이용해 주세요!’라고 후원자들에게 적극 안내하는 것이 마치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조심스러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하지만 “서로 너무 조심스러워하지 말고, 찾아오고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위해 더 좋다. 스스럼없이 연결되어 삶 속의 일부가 되는 경험, 그것이 정말 ‘나의 병원, 우리의 병원’이 되는 과정 아닐까?”라는 말씀에 이르자 그 배려와 헤아림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나는 과연 후원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더 깊이 헤아리려 했나?’ 하는 부끄러움도 일었고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나를 알아주고 챙겨줄 수 있는 병원’, ‘나의 한마디에 귀 기울이는 병원’이 되도록 더 애를 쓰면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