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6

보건재해 피해자 치료와 사태 해결을 위해 연구하고 활동해온 의사이자 의학자인 백도명 명예교수(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는 현재 녹색병원 직업병·환경성질환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백도명 선생은 원진재단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2대 소장을 역임하였고,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원전 방사능 피해, 라돈침대 건강영향조사 등에 대한 연구를 포함해 다양한 환경 분야에서 사회적 약자 편에서 진실을 규명해온 그간의 노고를 평가받아 2020년에는 ‘대한민국 인권상’의 최고상인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원로의사 백도명 선생께 ‘무비랜드’와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의 협업 <2025 노동절 ‘직업병’> 행사의 간이 진료소 상담을 요청하자 반갑게 수락해 주셨습니다. 요즘 가장 핫한 젊은이들의 공간 성수동에서 MZ세대와 만난다는 기대감과 궁금함도 있지 않으셨을까요? 백도명 선생은 상담 질문지부터 꼼꼼하게 고민하였고, 본인에게 부여된 의사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이번 과정을 내내 진지하게 임해주셨습니다.

협업 행사가 끝난 후, 노동절과 직업병을 모티브로 기획된 이번 행사에 함께하신 소감, 젊은이들을 만나고 느낀 우리 사회의 아픈 지점,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기부자로서 함께 참여하고 있는 이유 등에 대해 말씀 나누었는데요. 질문·대답 형태로 엮어 이곳에 올립니다.

 

 

원로의사 백도명, 성수동에서 MZ와 만나다


 Q1. 본인 소개와 함께 요즈음 하고 계신 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대학을 정년퇴직하고 녹색병원에서 일하는 백도명입니다. 원진레이온 환자분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 많은 분들이 점차 기저질환으로 사망하고 있으신데요. 이황화탄소중독의 진행이 이러한 기저질환의 악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또 녹색병원의 도움을 받아 인도 엘리폴리머 피해자,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 등과 같은 환경재해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에 대한 건강평가와 조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Q2. 맨 처음 이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젊은 세대가 ‘노동’을 바라보는 모습을 저와 같이 나이 든 사람도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좋았습니다. 노동이란 ‘서로가 필요로 하는 삶의 기본 의미를 만들어 전달하는 사람들 간에 연결이 이루어지는 장’이라고 할 때, 현재 젊은 세대가 일을 하며 어렵게 느끼고 있는 지점 또한 ‘의미가 연결되는 그 행위 지점들에서 무언가 힘듦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결을 만드는데 투쟁도 중요하지만, 공감도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행사였습니다.

 

Q3. 간이 진료소 운영이 끝난 후 무비랜드에서 ‘인디아일’ 영화도 함께 보셨죠. 어떠셨나요?

가족이라는 관계를 넘어 직장 동료라는 관계가 일을 통해 맺어줄 수 있는 모습들을 담담히 볼 수 있었습니다.

 

Q4. 의사로서 젊은이들과 직접 만나 상담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장기적으로 고민되는 지점도 말씀해 주신다면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경제활동 때문에, 그리고 경제활동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나름의 불안정한 생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젊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두가 ‘잠자고 나서 개운하지 않다’고 호소하였습니다. 잠이 모자라 항상 피곤하거나, 반대로 너무 과다하게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일부는 일정한 생활 루틴이 없으면서 체중, 영양, 운동 등이 큰 폭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탈진 설문에서도 사회심리적, 그리고 신체적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소위 고혈압, 당뇨를 비롯한 만성질병과 노화는 이러한 문제들이 지속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대부분의 대사장애는 과다하든 혹은 과소하든 계속적인 스트레스에 처한 상황이 초래하는 삶의 불균형이라는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데요. 불균형은 염증을 야기하고, 지속되는 염증이 적응 능력을 감소시키면서 노화와 만성질환이 생기게 되는 거죠.

 

젊은이들의 신체 양상의 표면적인 원인은 균형이 깨진 식단, 위축된 활동량, 훼손된 수면 위생 등이 서로 이어지면서 일으키는 악순환으로 보입니다. 체중을 줄이려다 기운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활동량이 줄어 수면의 질이 훼손되는 식입니다. 한편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자면 어릴 적부터 시작된 경쟁과 비교의 삶, 크면서 이러한 경쟁과 비교를 악화시키는 SNS, 그렇지만 결국 하나의 잣대로만 재단되는 교육현장의 줄서기 등이 우리 삶을 과도하게 피곤하게 하는 건 아닐까, 판단이 됩니다.

성수동에서 만난 젊은이들을 통해 그들에게 생활의 불균형을 야기하는 사회적·시대적 잣대와 지향점의 획일성, 불합리성, 경직성 등의 문제, 그로 인한 스트레스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Q5. 요즘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 부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 등에서 우울감, 스트레스를 많이 느낍니다.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의 건강을 위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공자님 말씀 중에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과 같지 않고(知之者不如好之者), 좋아하는 것이 즐겨하는 것과 같지 않다(好之者不如樂之者)”는 말씀이 있어요. 즐기며 자기화한 것을 사람들과 나눌 때 더 큰 것이 만들어지죠. 이것이야말로 모두에게 이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되기도 할 텐데요.

사실, 열심히 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그리고 이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는 일도 모두 상대적이어서 중간에 바뀌기도 하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인생을 길게 보면 젊은 시절에는 다양한 것에 도전하고 시행착오도 겪어야 하죠. 그런데 젊음이 가질 수 있는 패기와 낭만을 우리 사회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을까요? 돈이나 명예와는 멀더라도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지원하고 기다려 줬으면 해요. 늦깎이도 다시 찾아 나설 수 있는 길이 있고, 쓰러진 사람에게도 다시 일어날 기회를 얼마든지 주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제도적으로도 이러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Q6. 그런 의미에서 녹색병원, 전태일의료센터의 소임이나 역할을 무엇이라 보시나요?

자기 스스로 돌볼 수 없거나 그럴 돈도, 여유도 없는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병원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7. 현재까지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도 꾸준히 기부하고 계시는데요. 동기가 무엇일까요? 의사로서, 혹은 앞선 세대로서의 사명감 때문일까요?

복잡하지 않아요. 제가 그동안 많은 혜택을 받고 살 수 있었기에,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비워야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웃음)

 

Q8.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나이 들어 정말 새로운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성수동’이라는 곳에 가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