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이야기]박향자 님의 이야기

2025-02-14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에는 수락 여부를 동의하시면 1천만 원 이상 기부자에게 감사패를 증정하는 예우가 있습니다. 2024년 11월, 1억 원을 보내주시며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추진위원으로 함께 하고 계신 박향자 님을 지난 1월 중순에 만났습니다.



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돈 많이 벌어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진 거죠.

교회를 다니면서 매월 1만원씩, 2만원씩, 그러다 10만 원씩을 더 필요로 하는 곳, 도와야 할 사람에게 눈을 돌리게 되었어요. 제가 막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나도 사는 게 넉넉하지 않은데, 남편과 둘이 벌어 자식 키우고 살아갈 뿐인데’ 하는 생각을 해왔지만, 그렇게 조금씩 더 기부하며 사는 삶이 전혀 아깝지 않고 당연해졌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생각을 도와주신 건지, 제가 무슨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전문적인 투자도 안 하는데 작년에 갑작스러운 수익이 생겼어요. ‘이건 뭐지, 하나님이 나를 심부름시키시려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하나님, 저 이제 연금 가지고 조용히 살만합니다. 저는 필요 없어요. 하나님 제게 일 그만 시키세요. 이 돈이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한테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에게 온 상황이 무척 부담스럽더군요. 제대로 못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으니까, 큰 돈이 반갑지 않은 거예요. 사실 어디에 기부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이런저런 고민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어찌 보면 까칠한 사람인데 왜 이런 역할을 저한테 주시는 걸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할 만한 사람한테 역할을 주시는 게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전태일의료센터가 눈에 들어왔어요. ‘전태일’이라는 이름에는 사람들이 갖는 소망과 기대가 있습니다. 그 이름만으로 어떤 병원인지 다 설명이 되죠.

그가 온 힘을 다해 바꾸며 해 나가고 싶었던 일들, 이를 위해 냈던 용기.. 그것이 자기 나름대로는 살 계획이잖아요. 예수님은 죽어서 천당에 가는 소망보다 이 땅에서 사회적약자와의 연대, 이를 위한 실천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어요. 전태일의료센터가 하나님이 눈물 흘리시고 안타깝게 여기는 분들에게 손 잡아주는 병원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에 병원들은 많지만 가난한 사람이나 사회적약자가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차별화된, 문턱 없는 병원은 드물잖아요.

 

‘내게 온 돈이 전태일의료센터를 통해서라도 흘러가게 해야겠다, 나한테 머물러 있으면 썩게 되고 결국 냄새가 나게 될 텐데 빨리빨리 흘려보내 새 생명의 잎을 틔우게 하고, 치유케 하는 그런 역할을 하도록 해야겠다’ 싶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서둘렀습니다. 남편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고(웃음), 아들에게 이런 생각을 알리고 서로 흡족한 마음을 확인하며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박향자 님과의 만남이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연락을 드리자 “감사패 같은 거 필요 없다”며 한사코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셨고, 다시금 연락을 드리자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근무표가 나와 봐야 일정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림의 시간 끝에 결국 만나 뵙게 되었어요. 직장 퇴직 후 쭉 생활해 오시다가 최근에는 시니어 일자리를 통해 바리스타 자격을 취득하고 카페에서 근무 중이셨습니다.

직접 내려주신 따뜻한 아메리카노, 모양에 자신이 없다며 수줍게 내미신 라떼아트 커피도 감사합니다. 신실한 신앙심과 자신만의 철학으로 멋진 일상을 살고 계신 박향자 님 뵙고 많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