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노동자를 안아준 전태일병원’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

사진제공 ⓒ셜록
2025년 9월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문신사법의 표결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33년 만에 타투이스트가 일반 직업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타투유니온이 화섬식품노조에서 노동조합으로 설립된 지 햇수로 6년이 지나서 얻게 된 기적과도 같은 성과입니다. 6년간 타투유니온이 경험한 연대의 손길은 따뜻하면서도 강렬했습니다. 이 기적의 중심에는 녹색병원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싸움을 시작하다
타투이스트는 타투 혹은 문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직업명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범죄자의 얼굴이나 팔 등에 죄명을 새기는 자자형이라는 형벌이었고, 한국전쟁에서는 북한군 포로의 귀환을 막으려는 의도로 ‘멸공’이나 ‘I LOVE USA’ 등을 새기는 전쟁범죄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조직폭력배들의 상징으로 타투를 접하게 됩니다. 결코 아름답지 않았던 이 문화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의해 아무도 할 수 없는 의료행위로 판결받게 되었고, 의도대로 아무도 할 수 없는 직업이 됩니다. 사법부의 의도는 아무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타투는 결국 국민의 4분의 1인 약 1,300만 명이 경험한 패션 혹은 미용 문화로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흐름에 놓이게 됩니다. 시장이 1조에 달할 정도로 커지자, 병의원들이 이 문화를 판례와 같이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마저 누르는 거대 권력이 됩니다. 전 세계에서 타투가 불법인 유일한 국가, 대한민국의 타투이스트들은 법적 제재를 받거나 태도가 돌변한 손님에게 협박을 당하고 돈을 지불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법제화가 시급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산업을 위한 자정과 기준이 되는 규정이 필요했습니다.
타투노동자를 안아준 진짜 전태일병원
타투유니온이 설립된 후, 타투유니온지회가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우리 산업과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공식적인 안전 규정이었습니다. 타투유니온은 화섬식품노조의 도움으로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님과 면담을 가졌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철딱서니 없는 그림쟁이들이었습니다. 거대한 의사 조직이 반대하는 것을 녹색병원에 요청하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일지 몰랐습니다. 후에 조금은 철이 든 임원들이 임상혁 원장님께 승낙의 이유를 묻자,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태일병원’의 원장인데, 타투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쓸 수 있겠어. 또 타투 소비자의 안전을 위하는 게 의료인이 할 일이기도 했고.”

도이가 그린 임상혁 원장
녹색병원이 타투유니온에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면서 2025년 9월 25일의 입법을 위한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임상혁 원장님께서 직접 참여하시는 [타투이스트 감염관리교육 TFT]가 만들어졌고, 오랜 시간을 연구하여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 [타투이스트 감염관리지침]과 [멸균 타투 절차]가 만들어졌습니다.


녹색병원이 만든 감염관리지침은 2021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용역을 통해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완벽한 감염관리’라는 평가를 받았고, 임상혁 원장님은 정부 연구용역에 ‘전문가자문위원’으로 위촉되셨습니다.
이후 타투의 법제화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끊임없이 감염관리체계를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지만, 검증받은 녹색병원의 [타투이스트 감염관리] 규정으로 인하여 논리적 반박이 가능해졌습니다. 또, [멸균 타투 절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위생 기준을 지키며 타투 작업을 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절차였습니다. 타투유니온 조합원들은 녹색병원의 강당에서 매달 감염관리지침 교육과 멸균 절차 교육을 받으며 안전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혁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가장 약한 부분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바꿔주신 녹색병원의 도움으로 결국 [문신사법]이 완성되었습니다. 문신사법이 여러 차례의 국회 심사와 표결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녹색병원과 임상혁 원장님만이 공식적으로 문신사법을 지지한 병원이자 의사였습니다. 모두가 부조리함을 알지만, 어느 누구도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타투 노동자에 대한 연대를 선언한 녹색병원은 원장님의 말씀을 빌려 말하면, ‘타투노동자를 안아준 진짜 전태일 병원’이라 불릴 수 있었습니다.
6년의 연대, 의아함과 감동이 교차했던 시간
문신사법이 통과된 후에도 녹색병원은 연대의 손길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그림을 함께 그리고 있습니다. 그린타투센터는 녹색병원 가까이 교육관을 설립하여 교육뿐만 아니라, 안전을 위한 연구와 통계 작업까지 그 업무를 확장합니다.
지난 6년의 시간동안 타투유니온은 녹색병원의 직접적인 수혜자였습니다. 하지만, 타투유니온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타투이스트들은 모두가 녹색병원의 따뜻한 울타리에서 혜택을 받았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30만에 달하는 타투노동자들과 1,300만 명의 타투 소비자는 모두가 녹색병원이 보내준 연대의 손길 덕분에 염원하던 법제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맨 처음 녹색병원을 포함한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는 저에게 참 의아한 과정이었습니다. 왜 이 많은 단체들이 아무것도 없는 타투유니온을 도와주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철이 조금 들면서 이제야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나약한 연대를 선배 연대가 돕는 것은 그들도 이 나약함을 이겨내는 과정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연대의 온기를 경험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약함에서 시작된 단체는 수없이 많은 연대를 거치면 단단하고 광대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이제 타투유니온은 선배들의 울타리 안에서 조금은 단단한 연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타투유니온 또한 시작하는 연대를 돕는 따뜻한 손길이 되기를 원합니다. 타투유니온이 처음으로 향하는 곳은 나약한 우리를 처음으로 품어줬던 녹색병원이었고, 녹색병원이 우리 다음에 올 노동자들을 위해 건립하고 있는 [전태일의료센터]의 후원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리 타투 노동자들을 위한 ‘귀한 병원’을 직접 짓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따뜻하고 가장 강력한 연대의 본보기가 되어준 병원
타투유니온 지회장으로 경험한 ‘노동자의 병원’은 가장 따뜻하고 가장 강력한 연대의 본보기였습니다. 그 감동과 감사는 [전태일의료센터]에 대한 동행으로, 결국 그 동행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 중 다시 한 노동자가 되어 ‘우리 노동자들의 병원’이 만들어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전태일의료센터의 개인 후원자이고, 아내와 두 딸도 각각 후원자입니다. 전태일의료센터 설립 기금 후원에 대한 타투유니온 대의원들의 의결이 끝났고, 곧 타투유니온의 모든 동지들과 노동조합 밖의 타투이스트 동료들도 ‘우리 병원’을 가진 특별하고 평범한 타투노동자가 됩니다. 제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전태일병원’ 녹색병원이 세상에 던져준 연대의 경험이 아무것도 모르던 그림쟁이들의 곧추선 등뼈와 경직된 마음을 춤추듯 동행하는 몸짓과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녹여냈다는 사실입니다. 전태일의료센터는 타투유니온이 경험한 값진 것들의 곱절로 나누는 병원이 되리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타투 노동자를 안아준 전태일병원’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
사진제공 ⓒ셜록
2025년 9월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문신사법의 표결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33년 만에 타투이스트가 일반 직업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타투유니온이 화섬식품노조에서 노동조합으로 설립된 지 햇수로 6년이 지나서 얻게 된 기적과도 같은 성과입니다. 6년간 타투유니온이 경험한 연대의 손길은 따뜻하면서도 강렬했습니다. 이 기적의 중심에는 녹색병원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싸움을 시작하다
타투이스트는 타투 혹은 문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직업명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범죄자의 얼굴이나 팔 등에 죄명을 새기는 자자형이라는 형벌이었고, 한국전쟁에서는 북한군 포로의 귀환을 막으려는 의도로 ‘멸공’이나 ‘I LOVE USA’ 등을 새기는 전쟁범죄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조직폭력배들의 상징으로 타투를 접하게 됩니다. 결코 아름답지 않았던 이 문화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의해 아무도 할 수 없는 의료행위로 판결받게 되었고, 의도대로 아무도 할 수 없는 직업이 됩니다. 사법부의 의도는 아무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타투는 결국 국민의 4분의 1인 약 1,300만 명이 경험한 패션 혹은 미용 문화로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흐름에 놓이게 됩니다. 시장이 1조에 달할 정도로 커지자, 병의원들이 이 문화를 판례와 같이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마저 누르는 거대 권력이 됩니다. 전 세계에서 타투가 불법인 유일한 국가, 대한민국의 타투이스트들은 법적 제재를 받거나 태도가 돌변한 손님에게 협박을 당하고 돈을 지불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법제화가 시급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산업을 위한 자정과 기준이 되는 규정이 필요했습니다.
타투노동자를 안아준 진짜 전태일병원
타투유니온이 설립된 후, 타투유니온지회가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우리 산업과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공식적인 안전 규정이었습니다. 타투유니온은 화섬식품노조의 도움으로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님과 면담을 가졌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철딱서니 없는 그림쟁이들이었습니다. 거대한 의사 조직이 반대하는 것을 녹색병원에 요청하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일지 몰랐습니다. 후에 조금은 철이 든 임원들이 임상혁 원장님께 승낙의 이유를 묻자,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태일병원’의 원장인데, 타투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쓸 수 있겠어. 또 타투 소비자의 안전을 위하는 게 의료인이 할 일이기도 했고.”
도이가 그린 임상혁 원장
녹색병원이 타투유니온에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면서 2025년 9월 25일의 입법을 위한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임상혁 원장님께서 직접 참여하시는 [타투이스트 감염관리교육 TFT]가 만들어졌고, 오랜 시간을 연구하여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 [타투이스트 감염관리지침]과 [멸균 타투 절차]가 만들어졌습니다.
녹색병원이 만든 감염관리지침은 2021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용역을 통해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완벽한 감염관리’라는 평가를 받았고, 임상혁 원장님은 정부 연구용역에 ‘전문가자문위원’으로 위촉되셨습니다.
이후 타투의 법제화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끊임없이 감염관리체계를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지만, 검증받은 녹색병원의 [타투이스트 감염관리] 규정으로 인하여 논리적 반박이 가능해졌습니다. 또, [멸균 타투 절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위생 기준을 지키며 타투 작업을 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절차였습니다. 타투유니온 조합원들은 녹색병원의 강당에서 매달 감염관리지침 교육과 멸균 절차 교육을 받으며 안전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혁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가장 약한 부분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바꿔주신 녹색병원의 도움으로 결국 [문신사법]이 완성되었습니다. 문신사법이 여러 차례의 국회 심사와 표결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녹색병원과 임상혁 원장님만이 공식적으로 문신사법을 지지한 병원이자 의사였습니다. 모두가 부조리함을 알지만, 어느 누구도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타투 노동자에 대한 연대를 선언한 녹색병원은 원장님의 말씀을 빌려 말하면, ‘타투노동자를 안아준 진짜 전태일 병원’이라 불릴 수 있었습니다.
6년의 연대, 의아함과 감동이 교차했던 시간
문신사법이 통과된 후에도 녹색병원은 연대의 손길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그림을 함께 그리고 있습니다. 그린타투센터는 녹색병원 가까이 교육관을 설립하여 교육뿐만 아니라, 안전을 위한 연구와 통계 작업까지 그 업무를 확장합니다.
지난 6년의 시간동안 타투유니온은 녹색병원의 직접적인 수혜자였습니다. 하지만, 타투유니온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타투이스트들은 모두가 녹색병원의 따뜻한 울타리에서 혜택을 받았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30만에 달하는 타투노동자들과 1,300만 명의 타투 소비자는 모두가 녹색병원이 보내준 연대의 손길 덕분에 염원하던 법제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맨 처음 녹색병원을 포함한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는 저에게 참 의아한 과정이었습니다. 왜 이 많은 단체들이 아무것도 없는 타투유니온을 도와주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철이 조금 들면서 이제야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나약한 연대를 선배 연대가 돕는 것은 그들도 이 나약함을 이겨내는 과정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연대의 온기를 경험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약함에서 시작된 단체는 수없이 많은 연대를 거치면 단단하고 광대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이제 타투유니온은 선배들의 울타리 안에서 조금은 단단한 연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타투유니온 또한 시작하는 연대를 돕는 따뜻한 손길이 되기를 원합니다. 타투유니온이 처음으로 향하는 곳은 나약한 우리를 처음으로 품어줬던 녹색병원이었고, 녹색병원이 우리 다음에 올 노동자들을 위해 건립하고 있는 [전태일의료센터]의 후원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리 타투 노동자들을 위한 ‘귀한 병원’을 직접 짓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따뜻하고 가장 강력한 연대의 본보기가 되어준 병원
타투유니온 지회장으로 경험한 ‘노동자의 병원’은 가장 따뜻하고 가장 강력한 연대의 본보기였습니다. 그 감동과 감사는 [전태일의료센터]에 대한 동행으로, 결국 그 동행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 중 다시 한 노동자가 되어 ‘우리 노동자들의 병원’이 만들어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전태일의료센터의 개인 후원자이고, 아내와 두 딸도 각각 후원자입니다. 전태일의료센터 설립 기금 후원에 대한 타투유니온 대의원들의 의결이 끝났고, 곧 타투유니온의 모든 동지들과 노동조합 밖의 타투이스트 동료들도 ‘우리 병원’을 가진 특별하고 평범한 타투노동자가 됩니다. 제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전태일병원’ 녹색병원이 세상에 던져준 연대의 경험이 아무것도 모르던 그림쟁이들의 곧추선 등뼈와 경직된 마음을 춤추듯 동행하는 몸짓과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녹여냈다는 사실입니다. 전태일의료센터는 타투유니온이 경험한 값진 것들의 곱절로 나누는 병원이 되리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