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립위원회 소식][기고] 겨울 잔업_ 성해나(소설가)

2026-06-15

소설 「혼모노」, 「두고 온 여름」 ,「빛을 걷으면 빛」등을 발표한 성해나 작가가 "전태일의료센터 기부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며 올 봄, 에세이를 보내주셨습니다. 글의 공개 시점을 가늠하던 중 최근 녹색병원과 전태일의료센터 마음상담소가 ‘작가노조’와 건강 지원 협약을 맺게 되어 드디어 이곳에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성해나 작가는 글 쓰는 노동자이자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동행 중인 기부자입니다. 성해나 작가의 에세이 속에 담긴 고민, 작가로 살아가는 삶과 노동, 서로를 향한 응원은 “나의 일, 당신의 하루”를 함께 지탱하고자 진행 중인 전태일의료센터의 <일, 낸다 캠페인> 취지와도 연결됩니다. 

곧 발행될 신간 작업에 여념 없던 와중에 귀한 글을 써 보내주신 성해나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노동과 하루


겨울 잔업


글_ 성해나(소설가)



며칠 전 작가노조가 3년의 준비 끝에 출범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글쓰기는 노동이다. 작가는 노동자다”라는 표어는 나 역시 깊이 공감했고, 부당 계약, 임금 체불·미지급에 맞서 교섭하고, 안전한 창작 환경을 위해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 역시 절실히 와닿았다. 

하지만 잘 되었으면, 염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잘 될 수 있을까, 라는 슬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종종 이곳이 몹시 양가적으로 굴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안에서는 예술가 저마다 목소리를 크게 내길 원하고, 그것을 ‘기개’로, ‘용기’로 여기지만, 작품 바깥에서 예술가가 목소리를 내는 건 아무도 원치 않는다. 권리나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것은 기개 아닌 몽니가, 도약 아닌 발악으로 굳어져 소거되는 것 같다.


한때는 작가들과 만나면 도서 정가제가 심심찮게 화두로 나오곤 했다. ‘책이 너무 비싸다’, ‘비싸서 읽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고, 그게 우리 안에 부채로 남았던 것 같다. 그에 관해선 저마다 다른 의견을 냈으나 모이는 결말은 비슷했다. 

책은 과연 비싼가. 

해마다 독서율이 줄고, 출판 시장이 어려운 건 과연 도정제에 동의한 작가 탓인가.

조지 오웰의 「책 대 담배」라는 에세이가 있다. 1946년 <트리뷴>에 발표되었으니 정확히 80년 전 글인데, 그때도 사람들은 책을 구입하거나 읽는 걸 비싼 취미로 여긴 것 같다.

‘혹시 우리가 문학면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고 묻는 건 아니죠, 그렇죠? (...) 우리 중에 책 사는 데 돈 쓸 수 있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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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평균적인 사람들이 갖기 힘든 취미란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을 두고 조지 오웰은 꽤 흥미로운 실험을 자행했다. 자신이 일 년간 책값으로 쓰는 돈과 담배를 사는 데 쓰는 돈을 산출하고 대조해 본 것이다. 뒤에 나오지만, 그 당시 문학서는 평균 8실링이었다. 담뱃값 역시 8실링이었고. 책 한 권이 담뱃값과 맞먹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작가인 조지 오웰 역시 책보다 담배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고, 넓게 보았을 때 대중 역시 그러할 거라(혹은 책<<담배) 추측했다. 

조지 오웰식으로 따지면 한국의 문학서는 평균 1만 5천 원 정도니 이를 기호식품에 적용하면 이렇게 환산할 수 있다.


책 한 권 = 생맥주 500ml 3잔.

책 한 권 = 아메리카노 2샷 기준 3잔.

책 한 권 = 두바이 쫀득 쿠키 2개 반.

책 한 권 = 담배 3갑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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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맥주 몇 잔이니 담배 몇 갑이니 하는 환산으로 책의 가치를 매기는 건 납작한 계산법일 수 있다. 조지 오웰의 문장을 빌리자면 ‘한 사람의 정신 일부를 구성하는 책이 있고,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책’도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책들을 만나기까지는 수많은 선택과 긴 시간이 요하지만, 그 과정까지 도달하며 인간은 이전과 다른 존재로 바뀌고, 새로운 세계로 진일보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책들이 숱하다. 삭거나 젖는 게 아니라면 책은 평생 소장 가능하다. 또한 중고로 팔 수도 있고, 빌릴 수도, 빌려줄 수도 있으니 독서를 비싼 취미라 상정하기엔 무리가 있을 듯하다.

책값이 비싸다는 논의엔 그 한 권을 집필하기까지 작가가 겪는 시행착오나 사유의 시간, 종이 혹은 노트북 앞에서의 치열하고 지난한 분투 등은 따라붙지 않는다. 출퇴근이 따로 없는 노동 환경도, 집필이라는 본업과 더불어 갖가지 부업을 전전해야 생계가 유지되는 사정도, 1980년대부터 40년 가까이 고정된 인세 10% 역시 생략되어 있다.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책 한 권을 내기까지 짧으면 2년, 길면 10년이 소요 된다. 이를 최저임금 기준으로 깐깐히 추산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노동이 그렇게 헤아려진 적은 한 번도 없으니 사실상 환산이 다소 어색하기도 하다.

한때는 작가들과 설왕설래하며 어설프게나마 방안을 찾기도, 진지하게 고심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누구도 그러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다들 지쳤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끔은 우리끼리의 열띤 토론이 세상에 닿지 않는 헛헛한 메아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3년 전 겨울, 나는 몇 차례 쿠팡 물류센터에서 간간이 일용직으로 일했다. 

장편 소설이 출간되고 반년쯤 지나서였을 것이다.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인세나 원고료로는 생활이 어려워 궁하면 센터에서 주간조로 집품을 했다. (유동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어 예술가 중에도 일용직을 하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바코드를 찍고, 물건을 수량대로 카트에 담아 옮기는 작업을 반복, 반복……. 내가 일한 센터에선 1인당 두 개씩 손난로를 나누어주었으나 그것으론 추위를 이기기 어려웠고, 고양이 모래, 사료, 생수 묶음 같은 중량물을 주로 다뤄 시시때때로 팔과 어깨가 저리고,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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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씻을 힘도 없을 만큼 진이 빠졌다. 보통은 대강 씻고 누웠으나 마감이 있고, 마감이 없더라도 애가 탈 때는 글을 썼다. 오늘 분의 소설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잠이 몰려왔고, 몽롱한 상태로 쓰다 쿠팡 임금이 들어왔다는 문자를 받으면 무엇이 본업이고 무엇이 부업인지 헷갈릴 때가 숱했다. 정해진 시간 없이, 밤낮 없이 줄곧 이어지는 잔업의 반복, 반복……. 

이것은 내 삶의 단편이지만, 어떤 예술가에겐 일상일 수 있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시간이 작품에 뚜렷이 박히거나 드러나지 않으니 간혹 어떤 이들은 우리 삶을 오인하기도 한다.

‘나도 일을 안 하고 소설 작가 같은 예술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 없이 보내고 싶다’

한 영상에서 이런 이야길 접하고 심란해진 적이 있다. 누군가의 사견이라고 정리하고 싶지만, 그간 예술에 붙은 카테고리가 노동이나 생업, 생존이 아닌 잉여의 산물, 고고하고 우아한 취미에 가까웠기에 이러한 편견까지 생성되나 싶어 쉽게 넘길 수 없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예술이 여전히 노동으로 호명되지 못한 상황에서 작가노조의 출범은 왜 이토록 늦게야 이런 최소한의 결안이 필요해졌는지를 되묻게 한다. 어쩌면 늦은 출발 덕에 비로소 예술을 재능의 신화나 고고한 취미가 아닌 권리와 생존의 언어로 다시 써갈 가능성 또한 열렸는지 모른다.

부당함과 오인 속에서 예술가가 견딘 시간은 창작의 일부라기보다 오랫동안 개인에게 떠넘겨진 잔업에 가까웠던 것 같다. 작가노조의 출범이 그 잔업을 더는 각자의 인내로만 버티게 두지 않고, 함께 기준을 세우고 책임을 묻기 위한 시작이기를 바라며, 나 역시 동참하고 싶다.


**주 : 조지 오웰 『책 대 담배』,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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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