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연은 비극과 희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고, 당신과 나의 삶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 사회에서 아프지만 존엄있게 살고자 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994년, 민중미술가인 부친 김경학과 조각가인 모친 임정임의 딸로 1.7kg의 작고 여린 아이 김애린이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김지하 시인의 ‘애린’을 떠올리며 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언덕 애(厓), 기린 린(麟). 도망가다 뒤돌아보는 기린과 사슴, 그리고 노루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늘 뒤편을 돌아보며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김애린은 경희대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한 후 희망연극문화부에서 활동했습니다. 1년에 두 번 올리는 공연에서 청소노동자 역을 맡았던 김애린은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연극을 통해 “타인 시선으로 생각하는 법을 나도 모르게 배우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전합니다.
더 잘하는 기자, 단단한 기자가 되고 싶어요
김애린은 2019년 1월 KBS 광주방송총국에 입사하며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회부 기자로서 광주에서 발생한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현장 등 곳곳을 누볐고 특히 5·18 민주화운동, 일제 강제동원 현안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김애린 기자는 2024년 7월 연중 기획 보도 ‘영상채록 5·18’로 동료들과 5·18언론상을 수상하기로 했습니다. 그럴수록 더 많은 탐사보도에 목말랐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김애린은 2024년 9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저널리즘혁신학과 1기로 입학했습니다. 지원서에는 “‘잘하는 기자’로 거듭나고 싶어 더 공부하고 싶었다.”고 적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팩트체크’ 수업을 들으며 “왜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여전히 기자들이 치열해야 하는가, 왜 지역의 역할이 중요한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내러티브 저널리즘’ 수업을 들으면서는 인물과 서사를 중심으로 이슈와 구조를 드러내는 보도를 꿈꿨습니다. 당시 수업의 발제 과제로 제출한 ‘문을 닫는 붕어빵 노점과 그 사연’을 한층 발전시켜 2024년 12월 20일 ‘사라지는 붕어빵… 노점허가제 논의를’이 정식 방영되었습니다. 1분 40초짜리 짧은 보도가 아쉬웠지만 일하며 공부하는 김애린 기자는 배우는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붕어빵 보도는 김 기자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먼저 떠난 사람이 되다
2024년 12월 휴일의 아침, KBS 광주방송총국 보도국 단체 대화창은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속보와 함께 쉴 새 없이 깜박였습니다. “방콕발 제주항공, 착륙 중 화재 발생, 두 명은 구조, 불은 아직.” 동료 기자들은 더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그이는 며칠 전 하필 방콕으로 휴가를 떠난 김애린 기자였습니다. 잠시 후, 단체 대화창에 한 줄 공지가 떴습니다. “탑승자 명단에 김애린이 있습니다.” 김애린 KBS 광주방송총국 기자가 2024년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숨졌습니다. 향년 30세.

동료들의 연락, “우리의 이름을 나란히 배치해 줄 수 있나요?”
2025년 11월 18일,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사무국으로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습니다. “KBS 광주 ‘영상채록 5.18’을 만든 팀인데 5.18언론상을 수상하여 받은 상금 100만 원을 벽돌 기부 단체명 ‘KBS광주영상채록5.18’로 입금했다. 우리가 기부한 이름이 고 김애린 기자의 이름 옆에 나란히 배치될 수 있을지 문의드린다.”는 연락이었습니다. 2024년에 언론상을 수상한 후 상금을 기부하기로 했는데 제작팀의 일원이던 김애린 기자가 이미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기부한 사실을 알게 되어 팀원들도 센터 건립에 동참하기로 했고, 이 기부 절차를 김애린 기자가 밟기로 하였답니다. 그런데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김 기자가 황망히 세상을 떠나며 후속 진행이 멈추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태일의료센터에 기부를 한 ‘칸 무바실룰라’의 기사가 널리 알려졌고 생전에 김애린 기자가 칸 무바실룰라의 과거 사연을 취재한 사실이 공유되면서 중단됐던 기부 절차가 재개된 것입니다.
고 김애린 기자는 목포MBC 기자인 남편과 2024년 8월 23일 부부 애칭 ‘석이린이’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기부한 바 있습니다. 건립 추진위원이던 ‘석이린이’ 부부는 2024년 12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함께 사망하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위 글은 <한국일보 - [비로소 부고] “탐사보도에 목말랐던 서른 살 기자... 불길 속에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김혜영 기자, 2025.10.24.)>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 [비로소 부고] 기사 원문 확인하기
*이 사연은 비극과 희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고, 당신과 나의 삶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 사회에서 아프지만 존엄있게 살고자 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994년, 민중미술가인 부친 김경학과 조각가인 모친 임정임의 딸로 1.7kg의 작고 여린 아이 김애린이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김지하 시인의 ‘애린’을 떠올리며 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언덕 애(厓), 기린 린(麟). 도망가다 뒤돌아보는 기린과 사슴, 그리고 노루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늘 뒤편을 돌아보며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김애린은 경희대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한 후 희망연극문화부에서 활동했습니다. 1년에 두 번 올리는 공연에서 청소노동자 역을 맡았던 김애린은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연극을 통해 “타인 시선으로 생각하는 법을 나도 모르게 배우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전합니다.
더 잘하는 기자, 단단한 기자가 되고 싶어요
김애린은 2019년 1월 KBS 광주방송총국에 입사하며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회부 기자로서 광주에서 발생한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현장 등 곳곳을 누볐고 특히 5·18 민주화운동, 일제 강제동원 현안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김애린 기자는 2024년 7월 연중 기획 보도 ‘영상채록 5·18’로 동료들과 5·18언론상을 수상하기로 했습니다. 그럴수록 더 많은 탐사보도에 목말랐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김애린은 2024년 9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저널리즘혁신학과 1기로 입학했습니다. 지원서에는 “‘잘하는 기자’로 거듭나고 싶어 더 공부하고 싶었다.”고 적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팩트체크’ 수업을 들으며 “왜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여전히 기자들이 치열해야 하는가, 왜 지역의 역할이 중요한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내러티브 저널리즘’ 수업을 들으면서는 인물과 서사를 중심으로 이슈와 구조를 드러내는 보도를 꿈꿨습니다. 당시 수업의 발제 과제로 제출한 ‘문을 닫는 붕어빵 노점과 그 사연’을 한층 발전시켜 2024년 12월 20일 ‘사라지는 붕어빵… 노점허가제 논의를’이 정식 방영되었습니다. 1분 40초짜리 짧은 보도가 아쉬웠지만 일하며 공부하는 김애린 기자는 배우는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붕어빵 보도는 김 기자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먼저 떠난 사람이 되다
2024년 12월 휴일의 아침, KBS 광주방송총국 보도국 단체 대화창은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속보와 함께 쉴 새 없이 깜박였습니다. “방콕발 제주항공, 착륙 중 화재 발생, 두 명은 구조, 불은 아직.” 동료 기자들은 더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그이는 며칠 전 하필 방콕으로 휴가를 떠난 김애린 기자였습니다. 잠시 후, 단체 대화창에 한 줄 공지가 떴습니다. “탑승자 명단에 김애린이 있습니다.” 김애린 KBS 광주방송총국 기자가 2024년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숨졌습니다. 향년 30세.
동료들의 연락, “우리의 이름을 나란히 배치해 줄 수 있나요?”
2025년 11월 18일,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사무국으로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습니다. “KBS 광주 ‘영상채록 5.18’을 만든 팀인데 5.18언론상을 수상하여 받은 상금 100만 원을 벽돌 기부 단체명 ‘KBS광주영상채록5.18’로 입금했다. 우리가 기부한 이름이 고 김애린 기자의 이름 옆에 나란히 배치될 수 있을지 문의드린다.”는 연락이었습니다. 2024년에 언론상을 수상한 후 상금을 기부하기로 했는데 제작팀의 일원이던 김애린 기자가 이미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기부한 사실을 알게 되어 팀원들도 센터 건립에 동참하기로 했고, 이 기부 절차를 김애린 기자가 밟기로 하였답니다. 그런데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김 기자가 황망히 세상을 떠나며 후속 진행이 멈추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태일의료센터에 기부를 한 ‘칸 무바실룰라’의 기사가 널리 알려졌고 생전에 김애린 기자가 칸 무바실룰라의 과거 사연을 취재한 사실이 공유되면서 중단됐던 기부 절차가 재개된 것입니다.
고 김애린 기자는 목포MBC 기자인 남편과 2024년 8월 23일 부부 애칭 ‘석이린이’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기부한 바 있습니다. 건립 추진위원이던 ‘석이린이’ 부부는 2024년 12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함께 사망하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위 글은 <한국일보 - [비로소 부고] “탐사보도에 목말랐던 서른 살 기자... 불길 속에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김혜영 기자, 2025.10.24.)>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 [비로소 부고] 기사 원문 확인하기